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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찬적 (Sacramental) 섬김

Monday, November 9th, 2020  •  12:00 am – 11:30 pm
Yearly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골로새서 1:24)


주의 일꾼은 성찬적 ‘중보자(go-between)’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과 일치되고, 주의 구속의 실체에 일치됨으로 인해 주께서 그 일꾼을 통해 계속 생명을 창조하실 수 있습니다. 이는 그 일꾼의 인격이 뛰어나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 아니라 그 일꾼의 삶을 통해 그리스도의 실체가 다른 사람에게 임한다는 뜻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역사 속에서의 주님의 삶과 죽음을 선포할 때 우리의 말씀은 듣는 자들을 위한 성찬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선포된 이 말씀을 우리 주님의 구속을 근거로 하여 말씀을 듣는 자들에게 다른 방법으로는 이룰 수 없는 새 창조를 이루십니다. 만일 예수님에 관한 계시 대신에 사람의 삶 속에 나타난 구속의 결과만을 선포하면 말씀을 듣는 자들에게 나타나는 결과는 새 생명이 아니라 세련된 영적 문화가 될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선포가 아닌 것들은 다른 영역에 속한 것이므로 성령께서 그 메시지를 증거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의 진리를 선포할 때 오직 주님만이 진리를 듣는 영혼들 안에서 재창조의 역사를 일으키실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의도에 맞게 말씀을 선포해야 합니다.


“그 사람의 인격은 참 대단하군! 아주 매력적이야! 놀라운 통찰력을 가지고 있어!”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의 복음이 어떻게 역사할 수 있겠습니까? 즉, 인간적 매력으로 사람을 끄는 것은 복음의 선포와 다른 선상에 있기 때문에 복음이 역사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만일 누군가가 자신의 인격으로 사람을 끌면, 그의 호소력은 그의 인격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주님과 하나가 되면 사람을 끄는 것은 그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언제나 위험은 사람이 영광을 받으려는 데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주님을 높여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요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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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나의 최고봉 / 오스왈드 체임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