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절 구속으로 애굽에서 해방된 이스라엘은 바로 가나안으로 들어가지 않습니다. 사십년 동안 광야를 지나갑니다. 광야는 학교였습니다. 애굽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백성이 된 이스라엘을 위한 학교였습니다. 자기 백성을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이기 위한 하나님의 학교였습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은 아비가 자식을 양육하듯 이스라엘을 훈련함으로 인도했고, 인도하심으로 훈련했습니다. 광야의 여정 내내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한걸음씩 그들을 인도했습니다.
15 성막을 세운 날에 구름이 성막 곧 증거의 성막을 덮었고 저녁이 되면 성막 위에 불 모양 같은 것이 나타나서 아침까지 이르렀으되 16 항상 그러하여 낮에는 구름이 그것을 덮었고 밤이면 불 모양이 있었는데 17 구름이 성막에서 떠오르는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곧 행진하였고 구름이 머무는 곳에 이스라엘 자손이 진을 쳤으니 18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행진하였고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진을 쳤으며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무는 동안에는 그들이 진영에 머물렀고 19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무는 날이 오랠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행진하지 아니하였으며 20 혹시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무는 날이 적을 때에도 그들이 다만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진영에 머물고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행진하였으며 21 혹시 구름이 저녁부터 아침까지 있다가 아침에 그 구름이 떠오를 때에는 그들이 행진하였고 구름이 밤낮 있다가 떠오르면 곧 행진하였으며 22 이틀이든지 한 달이든지 일 년이든지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물러 있을 동안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진영에 머물고 행진하지 아니하다가 떠오르면 행진하였으니 23 곧 그들이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진을 치며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행진하고 또 모세를 통하여 이르신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여호와의 직임을 지켰더라 (민수기 9:15-13)
16절은 광야를 지나는 내내 낮에는 구름이 성막을 덮었고 밤이면 그것이 불 모양으로 보였다고 적고 있습니다, '항상 그러하여'(it was always). 구름이 떠오르는 때가 곧 이스라엘이 행진하는 때였고, 하나님이 명령하는 곳에 멈추어 그곳에 진을 쳤습니다. 구름은 그 위에 머물렀고 구름이 머무는 동안에는 이스라엘도 진영에 머물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에 이스라엘은 즉각적으로 행진을 시작했고, 또 명령을 따라 즉시로 멈추어 그 자리에 진을 치고 머물렀습니다. 구름의 움직임으로 표현되는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이스라엘이 ‘행진’했다는 말이 짧은 위의 여덟 절에서만 아홉번이나 등장합니다(17, 18, 19, 20, 21, 22, 23 절).
이 모든 일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과 뜻에 따라 이루어졌습니다(19-22절). 어떤 때는 구름이 저녁에 머물렀다가 바로 다음날 아침에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구름이 머문 날이 이틀이든지, 한달이든지, 혹은 일년 이든지 이스라엘은 그대로 준행했습니다. 언제, 어디서, 얼마나일지에 대해서는 누구도 예상도 예측도 할 수 없었습니다. 다 부질없는 일이었습니다. 언제 어디서 얼마만큼 머물다가 다시 언제 얼마만큼 행진해야 할지 모든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주권안에 감추어져 있었습니다. 감추인 것이 드러날 때에라야 이스라엘은 비로소 그 뜻을 따라 머물기도 하고 또 행진했습니다. (신 29:29).
““The secret things belong to the LORD our God, but the things that are revealed belong to us and to our children forever, that we may do all the words of this law.” (Deuteronomy 29:29, ESV)
이렇게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따르는 것을 배웠습니다. 여호와께서 명령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반면에 여호와께서 멈추라 하시는 곳에 멈추었습니다.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존된 삶, 하나님이 세우신 리더십에 전적으로 순복하는('모세를 통하여 이르신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지켰더라.' 23절) 삶을 배웠습니다. 그것도 매일매일의 경험을 통해 그것을 배웠습니다. 성경은 ‘항상 그러하였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길은 피조물인 우리가 예측하지도 못할 뿐더러 그 길을 찾지도 못합니다. 아니, 피조물은 하나님의 지혜와 그 길을 헤아릴 수 없다고 하는 것이 맞습니다. 구름이 하룻밤만 머물기도 했고, 일년 내내 한 곳에 머물기도 했습니다. 무엇이든 여호와가 뜻하신 바를 그들은 행했습니다.
““Can you find out the deep things of God? Can you find out the limit of the Almighty? It is higher than heaven—what can you do? Deeper than Sheol—what can you know? Its measure is longer than the earth and broader than the sea.” (Job 11:7–9, ESV)
만나(Manna)로...
광야에서의 이런 훈련을 생각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또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만나입니다. 만나는 날마다 하늘로부터 내리는 기적이었습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통해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절대적으로 순종하도록 이스라엘을 훈련하신 것처럼, 만나를 통해서는 날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바라보도록 훈련하셨습니다.
“You gave your good Spirit to instruct them and did not withhold your manna from their mouth and gave them water for their thirst.” (Nehemiah 9:20, ESV)
하나님은 만나를 주시되 특별한 방식으로 이스라엘에게 주셨습니다. 먼저 만나를 거두는 당일의 양식만큼만 거두어야 했습니다. 만나를 아무리 많이 거두어도 거둔 그 날이 지나면 양식으로 쓸 수가 없었습니다. 다음날 먹을 요량으로 남겨둔 만나는 밤이 지나며 금새 곰팡이로 뒤덮여 먹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날마다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의지하고 경험하였습니다.
만나를 통해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도록 훈련하셨습니다. 안식일 전날에는 다른 날들과 달리 두배로 모으도록 하셨습니다. 다른 날과 달리 안식일에는 남은 만나가 그대로 있었습니다. 그래서 안식일에는 양식을 위해 수고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 자신의 마음을 보아 쉽게 짐작할 수 있듯이 안식일에 대한 하나님의 분명한 뜻을 알고도 하나님이 안식일에 대한 규칙을 발하신 뒤 처음 맞는 안식일에 불신앙과 불경함으로 자의로 만나를 거두러 나간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부끄러운 빈손을 가지고 진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하나님의 훈련을 받았고 잊어버릴 수 없는 교훈, 즉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배웠습니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신명기 8:3, NKRV)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것은 오늘날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 때 이스라엘을 그렇게 인도하신 하나님이 지금도 자신의 교회를 그렇게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루하루의 경험으로 이 교훈을 배워야 했던 것처럼, 우리 역시 일상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이 규칙을 배웁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명령하시거나 금하시는 바를 따라 행진하고 진을 쳤습니다.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때에 공급하신 것을 먹었고, 하나님이 공급하시지 않은 때에는 주렸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고 또 그렇게 죽었습니다. 이런 모든 훈련을 통해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입술을 주목하였고 그의 입술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을 따라 살았습니다. 그들의 삶은 하나도 빠짐없이 하나님의 입술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위에 얹혀져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주 예수께서 마귀에게 대답하시면서 사용하신 신명기 8:3의 말씀이 뜻하는 바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엄연한 실체를 깨닫게 하기 위해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주리게 하고 만나로 먹이고 또 겸비하게 하셨다고 합니다.(신 8:3) 광야에서 이스라엘에게 주림과 목마름과 만나를 공급하신 것처럼 하나님은 오늘날에도 자기 백성을 그렇게 인도하십니다.
그러나 육신의 양식인 만나를 먹은 자들이 죽은 것처럼(요 6:49) 하나님의 일용할 양식을 힘입어 기동하며 사는 우리 역시 죽습니다. 하지만 위에 계시된 하나님의 뜻에 따르면 우리 역시 광야의 이스라엘과 같이 이 땅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일용할 양식을 먹고 살아가는 동안 경험하고 배우고 체득해야 할 삶의 원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광야에서 만나로 먹이신 것이 바로 이 사실을 경험하게 하기 위함이었다고 하기때문입니다,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신명기 8:3)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떡"으로...
하지만 말세를 사는 우리는 그것이 다가 아니었음을 압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이 먹은 '하늘의 만나'는 장차 하늘로부터 오실 영원히 죽지 않고 살도록 하는 ‘살아있는 떡’을 가리키는 표지였습니다. 그것은 바로 ‘생명의 떡’이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자신을 가리켜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고 친히 말씀하신 예수께서(요 6:48) 또한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떡’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고 하십니다(요 6:51).
“I am the living bread that came down from heaven. If anyone eats of this bread, he will live forever. And the bread that I will give for the life of the world is my flesh.”” (John 6:51, ESV)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떡'이신 예수님은 죄인들을 위해 십자가에서 찢기셨습니다. 그는 ‘생명의 떡’으로서 자신이 다름아닌 이 일을 위해 오신 것을 스스로 아셨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결연히 골고다로 가셨습니다, “예수께서……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눅 9:51).
“When the days drew near for him to be taken up, he set his face to go to Jerusalem.” (Luke 9:51, ESV)
예수님은 자신이 줄 떡은 다름아닌 바로 자기 자신’이라고 합니다,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요 6:51). ‘세상의 생명을 위한’ 이라는 말은 ‘세상 사람들이 생명을 얻도록 하는’이라는 말입니다. 몇 절 뒤에서 예수님은 자신의 십자가의 죽음을 가리키며 친히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요 6:57-58) 과연 사람은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삽니다. 그리고 그 말씀은 다름아닌 이 모든 날 마지막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에게 오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의 인도와 신자의 순종
낮에는 불기둥, 밤에는 구름기둥으로...
유월절 구속으로 애굽에서 해방된 이스라엘은 바로 가나안으로 들어가지 않습니다. 사십년 동안 광야를 지나갑니다. 광야는 학교였습니다. 애굽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백성이 된 이스라엘을 위한 학교였습니다. 자기 백성을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이기 위한 하나님의 학교였습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은 아비가 자식을 양육하듯 이스라엘을 훈련함으로 인도했고, 인도하심으로 훈련했습니다. 광야의 여정 내내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한걸음씩 그들을 인도했습니다.
15 성막을 세운 날에 구름이 성막 곧 증거의 성막을 덮었고 저녁이 되면 성막 위에 불 모양 같은 것이 나타나서 아침까지 이르렀으되 16 항상 그러하여 낮에는 구름이 그것을 덮었고 밤이면 불 모양이 있었는데 17 구름이 성막에서 떠오르는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곧 행진하였고 구름이 머무는 곳에 이스라엘 자손이 진을 쳤으니 18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행진하였고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진을 쳤으며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무는 동안에는 그들이 진영에 머물렀고 19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무는 날이 오랠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행진하지 아니하였으며 20 혹시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무는 날이 적을 때에도 그들이 다만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진영에 머물고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행진하였으며 21 혹시 구름이 저녁부터 아침까지 있다가 아침에 그 구름이 떠오를 때에는 그들이 행진하였고 구름이 밤낮 있다가 떠오르면 곧 행진하였으며 22 이틀이든지 한 달이든지 일 년이든지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물러 있을 동안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진영에 머물고 행진하지 아니하다가 떠오르면 행진하였으니 23 곧 그들이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진을 치며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행진하고 또 모세를 통하여 이르신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여호와의 직임을 지켰더라 (민수기 9:15-13)
16절은 광야를 지나는 내내 낮에는 구름이 성막을 덮었고 밤이면 그것이 불 모양으로 보였다고 적고 있습니다, '항상 그러하여'(it was always). 구름이 떠오르는 때가 곧 이스라엘이 행진하는 때였고, 하나님이 명령하는 곳에 멈추어 그곳에 진을 쳤습니다. 구름은 그 위에 머물렀고 구름이 머무는 동안에는 이스라엘도 진영에 머물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에 이스라엘은 즉각적으로 행진을 시작했고, 또 명령을 따라 즉시로 멈추어 그 자리에 진을 치고 머물렀습니다. 구름의 움직임으로 표현되는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이스라엘이 ‘행진’했다는 말이 짧은 위의 여덟 절에서만 아홉번이나 등장합니다(17, 18, 19, 20, 21, 22, 23 절).
이 모든 일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과 뜻에 따라 이루어졌습니다(19-22절). 어떤 때는 구름이 저녁에 머물렀다가 바로 다음날 아침에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구름이 머문 날이 이틀이든지, 한달이든지, 혹은 일년 이든지 이스라엘은 그대로 준행했습니다. 언제, 어디서, 얼마나일지에 대해서는 누구도 예상도 예측도 할 수 없었습니다. 다 부질없는 일이었습니다. 언제 어디서 얼마만큼 머물다가 다시 언제 얼마만큼 행진해야 할지 모든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주권안에 감추어져 있었습니다. 감추인 것이 드러날 때에라야 이스라엘은 비로소 그 뜻을 따라 머물기도 하고 또 행진했습니다. (신 29:29).
““The secret things belong to the LORD our God, but the things that are revealed belong to us and to our children forever, that we may do all the words of this law.” (Deuteronomy 29:29, ESV)
이렇게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따르는 것을 배웠습니다. 여호와께서 명령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반면에 여호와께서 멈추라 하시는 곳에 멈추었습니다.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존된 삶, 하나님이 세우신 리더십에 전적으로 순복하는('모세를 통하여 이르신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지켰더라.' 23절) 삶을 배웠습니다. 그것도 매일매일의 경험을 통해 그것을 배웠습니다. 성경은 ‘항상 그러하였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길은 피조물인 우리가 예측하지도 못할 뿐더러 그 길을 찾지도 못합니다. 아니, 피조물은 하나님의 지혜와 그 길을 헤아릴 수 없다고 하는 것이 맞습니다. 구름이 하룻밤만 머물기도 했고, 일년 내내 한 곳에 머물기도 했습니다. 무엇이든 여호와가 뜻하신 바를 그들은 행했습니다.
““Can you find out the deep things of God? Can you find out the limit of the Almighty? It is higher than heaven—what can you do? Deeper than Sheol—what can you know? Its measure is longer than the earth and broader than the sea.” (Job 11:7–9, ESV)
만나(Manna)로...
광야에서의 이런 훈련을 생각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또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만나입니다. 만나는 날마다 하늘로부터 내리는 기적이었습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통해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절대적으로 순종하도록 이스라엘을 훈련하신 것처럼, 만나를 통해서는 날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바라보도록 훈련하셨습니다.
“You gave your good Spirit to instruct them and did not withhold your manna from their mouth and gave them water for their thirst.” (Nehemiah 9:20, ESV)
하나님은 만나를 주시되 특별한 방식으로 이스라엘에게 주셨습니다. 먼저 만나를 거두는 당일의 양식만큼만 거두어야 했습니다. 만나를 아무리 많이 거두어도 거둔 그 날이 지나면 양식으로 쓸 수가 없었습니다. 다음날 먹을 요량으로 남겨둔 만나는 밤이 지나며 금새 곰팡이로 뒤덮여 먹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날마다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의지하고 경험하였습니다.
만나를 통해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도록 훈련하셨습니다. 안식일 전날에는 다른 날들과 달리 두배로 모으도록 하셨습니다. 다른 날과 달리 안식일에는 남은 만나가 그대로 있었습니다. 그래서 안식일에는 양식을 위해 수고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 자신의 마음을 보아 쉽게 짐작할 수 있듯이 안식일에 대한 하나님의 분명한 뜻을 알고도 하나님이 안식일에 대한 규칙을 발하신 뒤 처음 맞는 안식일에 불신앙과 불경함으로 자의로 만나를 거두러 나간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부끄러운 빈손을 가지고 진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하나님의 훈련을 받았고 잊어버릴 수 없는 교훈, 즉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배웠습니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신명기 8:3, NKRV)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것은 오늘날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 때 이스라엘을 그렇게 인도하신 하나님이 지금도 자신의 교회를 그렇게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루하루의 경험으로 이 교훈을 배워야 했던 것처럼, 우리 역시 일상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이 규칙을 배웁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명령하시거나 금하시는 바를 따라 행진하고 진을 쳤습니다.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때에 공급하신 것을 먹었고, 하나님이 공급하시지 않은 때에는 주렸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고 또 그렇게 죽었습니다. 이런 모든 훈련을 통해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입술을 주목하였고 그의 입술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을 따라 살았습니다. 그들의 삶은 하나도 빠짐없이 하나님의 입술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위에 얹혀져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주 예수께서 마귀에게 대답하시면서 사용하신 신명기 8:3의 말씀이 뜻하는 바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엄연한 실체를 깨닫게 하기 위해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주리게 하고 만나로 먹이고 또 겸비하게 하셨다고 합니다.(신 8:3) 광야에서 이스라엘에게 주림과 목마름과 만나를 공급하신 것처럼 하나님은 오늘날에도 자기 백성을 그렇게 인도하십니다.
그러나 육신의 양식인 만나를 먹은 자들이 죽은 것처럼(요 6:49) 하나님의 일용할 양식을 힘입어 기동하며 사는 우리 역시 죽습니다. 하지만 위에 계시된 하나님의 뜻에 따르면 우리 역시 광야의 이스라엘과 같이 이 땅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일용할 양식을 먹고 살아가는 동안 경험하고 배우고 체득해야 할 삶의 원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광야에서 만나로 먹이신 것이 바로 이 사실을 경험하게 하기 위함이었다고 하기때문입니다,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신명기 8:3)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떡"으로...
하지만 말세를 사는 우리는 그것이 다가 아니었음을 압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이 먹은 '하늘의 만나'는 장차 하늘로부터 오실 영원히 죽지 않고 살도록 하는 ‘살아있는 떡’을 가리키는 표지였습니다. 그것은 바로 ‘생명의 떡’이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자신을 가리켜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고 친히 말씀하신 예수께서(요 6:48) 또한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떡’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고 하십니다(요 6:51).
“I am the living bread that came down from heaven. If anyone eats of this bread, he will live forever. And the bread that I will give for the life of the world is my flesh.”” (John 6:51, ESV)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떡'이신 예수님은 죄인들을 위해 십자가에서 찢기셨습니다. 그는 ‘생명의 떡’으로서 자신이 다름아닌 이 일을 위해 오신 것을 스스로 아셨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결연히 골고다로 가셨습니다, “예수께서……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눅 9:51).
“When the days drew near for him to be taken up, he set his face to go to Jerusalem.” (Luke 9:51, ESV)
예수님은 자신이 줄 떡은 다름아닌 바로 자기 자신’이라고 합니다,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요 6:51). ‘세상의 생명을 위한’ 이라는 말은 ‘세상 사람들이 생명을 얻도록 하는’이라는 말입니다. 몇 절 뒤에서 예수님은 자신의 십자가의 죽음을 가리키며 친히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요 6:57-58) 과연 사람은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삽니다. 그리고 그 말씀은 다름아닌 이 모든 날 마지막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에게 오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Soli Deo Gloria
트리니티 뱁티스트 교회(Trinity Baptist Church)